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9년 한국시리즈 (문단 편집) == 여담 == * 전년도인 2008년 [[윤길현 욕설 사건]]으로부터 싹트기 시작한 양팀의 라이벌의식이 더욱 견고해지는 계기가 된 시리즈였다. * 이 해 한국시리즈 미디어 데이는 사상 최초로 방송으로 생중계 되었다. * [youtube(3flgHD5CAJU)] * [youtube(gI1KpKKH3pU)] * [youtube(ma-QWFWtDiw)]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기아 타이거즈의 응원이 SK 와이번스를 압도해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44&oid=076&aid=0002008628|기사]]까지 날 정도였다. 이전까지 [[엘롯기]]라는 멸칭으로 불리며 최하위를 전전했던 KIA와 3년 연속 챔피언에 도전하던 강호 SK의 대결이었지만 응원전 결과는 KIA의 압승이었다. 이는 [[2017년 한국시리즈|잠실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구단과의 한국시리즈]]에서도 직접 증명해보였다. * 여담으로 두산 베어스는 [[KBO 플레이오프/2009년|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게 [[리버스 스윕]]을 당한 이후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했는데, KIA 타이거즈의 잠실구장에서 편의제공 요청을 모두 받아들여줬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44&oid=076&aid=0002008608|[현장리포트] 두산 구단의 KIA 밀어주기?]] 잠실구장 매진을 늘 책임져주는 인기구단이기 때문이라는 해석과 [[2007년 한국시리즈]]부터 [[김성근]] 야구의 가장 큰 피해자였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왔지만 두산 관계자는 "1루쪽 덕아웃 공간이 협소해서 KIA의 요청을 받아준 것 뿐이다. 확대 해석은 하지 말아달라"고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한국시리즈 7차전 중계 도중 두산 팬이 광주 문학 쫓아가고 안방까지 내줬으니 곰의 복수를 꼭 해달라는 피켓을 들고 기아 타이거즈 응원석에서 응원하는 모습이 잡히기도 했으며,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는 롯데 자이언츠 팬 이 엘롯기 동맹이라는 피켓을 들고 기아 타이거즈 응원석에서 응원하는 모습이 잡히기도 했다. 당시 SK는 [[김성근]]으로 인해 [[어우두]]로 욕먹던 두산과 비슷할 정도로 7개 구단 공공의 적이였으니(...). * 10번의 우승을 경험한 [[무등 야구장]]의 마지막 한국시리즈다. 2경기 모두 KIA가 이김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 타이거즈가 11회의 한국시리즈에서 유일하게 3패를 기록한 시리즈이다. 7차전까지 치른 것은 해태 시절인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겨룬 이후 16년 만인데, 1993년 당시는 4승 1무 2패였다. * 유독 투수들의 등판이 많은 게임이었다. 기록을 보면 1차전에서는 KIA는 로페즈와 유동훈 SK는 카도쿠라, 고효준, 윤길현, 이승호, 정대현, 정우람이 등판했다. 2차전에서는 KIA는 윤석민, 곽정철, 유동훈 SK는 송은범, 고효준, 김원형, 이승호가 등판했다. 3차전은 KIA는 구톰슨, 서재응, 한기주, 정용운, 이대진, 손영민이 SK는 글로버, 이승호, 윤길현, 고효준, 김원형, 정대현이 등판했다. 4차전은 KIA는 양현종, 곽정철, 유동훈이 SK는 채병용, 정우람, 이승호, 윤길현이 등판했다. 5차전은 KIA는 로페즈가 완봉승을 SK는 카도쿠라, 정우람, 윤길현, 고효준이 등판했다. 6차전은 KIA는 윤석민, 곽정철, 이대진, 양현종이 SK는 송은범, 이승호, 고효준, 채병용이 등판했다. 7차전에서는 KIA는 구톰슨, 한기주, 양현종, 손영민, 곽정철, 로페즈, 유동훈이 SK는 글로버, 이승호, 카도쿠라, 윤길현, 정우람, 정대현, 고효준, 채병용이 등판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44&oid=117&aid=0002044576|[KS 7차전] 마운드 총력전 '역대 두번째 최다투수 출장 기록']] * 시즌 중 기사가 다시 한 번 발굴되었다. 2009년 6월 기자들과 인터뷰하면서 등산에 이야기를 하다가,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1807337&cpage=&mbsW=&select=&opt=&keyword=|순위경쟁을 하는 두산과 KIA를 개미로 비하한 것.]] 정작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모두 KIA 타이거즈에게 내주었다. * 7경기 모두 홈 유니폼을 입은 팀이 승리했다. 즉, 스위트 홈 시리즈다.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도 5차전까지 홈 유니폼을 입은 팀이 승리를 거둬 2009년과 비슷하게 가나 싶었으나 6차전에서 원정 유니폼을 입은 삼성이 승리하고 우승을 확정하면서 깨졌다. * KIA 팬들에게는 11차례의 한국시리즈 중에서도 잊지 못할 명승부로 남았다. 다만 영원히 까임방지권을 획득한 것으로 보였던 [[나지완]]은 2010시즌에 부진한 모습을 보여 결국 죽도록 까이는 신세로 돌아가기도 했다. 사실 1차전 8이닝 3실점, 5차전 완봉, 7차전 위급한 상황에 깜짝등판하여 0.2이닝을 깔끔하게 막는 등 실로 괴물같은 피칭으로 우승을 이끌었던 [[아킬리노 로페즈|로페즈]] 대신 끝내기 한방으로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하자 왜 저 녀석이 받느냐며 당일에도 까이긴 했다. 나지완도 좀 미안했는지, 자신도 "로페즈가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라고 말했다. 승리기여도만 따지면 로페즈가 우위인것은 맞으나 시리즈 팀타격을 살펴보면 나지완이 타자 쪽에서 손꼽히게 잘했다. 최희섭 김상현 이용규 김원섭 등 1~5번 타자들이 죄다 OPS 기준 나지완보다 못했다. 또 나지완은 7차전 패배가 다가왔을때 2점 홈런과, 끝내기 홈런을 쳐서 뒤집어 낸 공로가 있다.[* 누가 기록했느냐는 일단 눈감아두고, 2022년까지의 모든 한국시리즈를 따진다면 한국시리즈 완봉승은 10차례 나왔고,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은 단 '''네 번''' 뿐이다. 거기다가 시리즈를 끝내는 홈런으로 한정하면 단 '''두 번'''이며, 7차전 끝내기 홈런은 현재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단순하게 지금까지의 한국시리즈에서 완봉승과 끝내기 홈런의 가치를 비교하자면 당연히 후자가 더 가치가 크다는 것. 따라서 로페즈가 세 경기동안 투혼을 불사르며 완벽한 투구를 한 데에 수상을 못한 것을 아쉬워할 수는 있지만, KIA 타이거즈에게 10번째 우승을 100% 확정시켜 준 나지완을 폄하할 이유도 없으며 훗날 2009년 한국시리즈를 기억할 때 이 두 선수의 활약을 더 빛내 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일은, 7차전 끝내기 홈런을 친 나지완은 한국시리즈 MVP를 받았지만, [[1960년 월드 시리즈]]에서 7차전 끝내기 홈런을 친 [[빌 매저로스키]]는 그 해 월드시리즈 피츠버그 타선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고 끝내기 홈런까지 쳤음에도 불구하고 월드시리즈 MVP를 받지 못했다.] * 그동안 규정에도 없어 아무런 재제가 없었던 SK 전력분석원들의 수신호가 어째서 KIA를 상대로 했을때 KBO에서 문제시 하는건지 논란거리, KBO가 이것에 대한 대답을 대회요강 26조의 확대적용이라고 발표했으나 26조에는 수신호를 막는 구체적인 명문도 없을뿐더러 이는 '''2010년부터 시행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규정'''[* 정확히 말하면 26조는 덕아웃 전자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으로 본래 있었지만 구단들에 의해 무시되어와 사실상 사문화되어 있었고, 전자기기 논란이 커지자 KBO가 금지할 것을 밝혔지만 그 시점에서 구단들이, 특히 덕아웃 노트북에 업체 스티커를 붙여 광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약상 문제를 고려해 한 해 재시행을 유보했었다.] 이었다. 확대적용도 웃기지만 혼란을 줄이기 위해 한 해 미루었다던 규정이 버젓히 한국시리즈때 시행되어 수신호는 '''야구의 정보화'''라는 옹호론자와 '''야구는 선수만''' 한다는 반대론자들 사이에서 대혼란을 일으켰다. 또한 최근 몇 년간 [[SK 와이번스|SK]]를 포스트시즌에서 상대하며 수신호를 '''바로 옆에서''' 지켜봐오면서도 별 항의가 없었던 두산의 전력분석원들은 밥만 축내는 호구란걸 인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도 엄연히 프로인데 과연 몰라서 안했을까라는게 의문이다. 그런데 정작 SK측도 1차전 종료 후 논란이 된다면 관중석 수신호 전달을 안 하겠다고 하다가 이후 기자에게 다시 목격되어 조범현 감독에게 제보되어 5차전 시작 전 직접 다시 한 번 항의를 했다. 이후 [[조범현]] 감독이 전력분석원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기 위해 [[KBO 플레이오프/2009년]] 동안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 직접 가서 체크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외에도 [[장재중]] 배터리 코치도 김현수와 김동주의 부진을 보며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이 너무 큰 것 같다. 욕심이 앞서니 밸런스가 무너졌다. 우리 선수들에게서도 저런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선수들을 걱정했으나 [[https://sports.v.daum.net/v/20091018114004567|결과는 정반대]]였다. * 김정준 팀장과 이용균 경향신문 야구기자가 나눈 대화가 이용균 기자의 블로그에 자세하게 올라와 있다. [[https://blog.naver.com/uridoli/50080494752|블로그 주소]] *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없던 [[http://prologue.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yberokuk&logNo=50097865944&parentCategoryNo=&categoryNo=&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김광현]], [[http://www.pgr21.com/pb/pb.php?id=freedom&no=25776|전병두]], [[박경완]]이 공식적인 승인없이 덕아웃에 앉아 있었으나 크게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KIA 타이거즈 측에서도 원칙[* 관련 규정 3.17 양팀의 선수 및 교체 선수는 실제로 경기에 참가하거나 경기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거나, 1루 또는 3루의 베이스 코치로 나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 팀의 벤치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경기중에는 선수, 교체선수, 감독, 코치, 트레이너(Trainer), 배트 보이(Bat Boy) 이외는 어떠한 사람도 벤치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페널티:본 조항을 위반하였을 때는 심판원은 경고를 한 뒤 반칙자를 경기장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原註]현역 선수 등록에서 빠진 선수가 경기 전의 연습에 참가하거나 벤치에 앉는 것은 허용된다. 그러나 경기 중에는 투수의 웜업이나 상대팀을 야유하는 등 어떤 행동도 금지된다.]상으로는 안 되나 모른 척 묵인해줬다. 그런데 다음 해인 [[2010년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양준혁이 덕아웃에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받자 김성근 감독은 "인간적으로 양준혁과 나는 친하다. 선 감독과의 인간관계도 있다. '''그러나 원리원칙에 벗어나는 일이 너무 많다.''' KBO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KBO도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양준혁이 삼성 덕아웃에 앉는 건 엔트리에 없는 코치 한 명이 더 앉는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양준혁이 벤치에 앉으면 결국 항의를 할 것이다'''."라며 '''원칙론'''을 펼치며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또 김성근 감독은 "나는 양준혁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싶지 않다. 양준혁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삼성이 조심할 문제다."라며 삼성 구단측에 경고를 보냈다. 결국 [[양준혁]] 선수는 버스에서 경기를 관전할 수 밖에 없었으며 [[김성근]] 감독은 크게 비판을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김성근/구설/2010년#s-2.1]] 참조. * 이 시기 이후 디시인사이드의 [[야갤]]에서 반전라도/반KIA 감정이 강해져서 KIA가 오심으로 가장 많은 이득을 본 팀이라고 까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시리즈 '''7차전에서 SK의 5번째 득점이 오심'''이었던 것만 봐도 KIA를 밀어줬다는 말은 신빙성이 없다. KBO 리그에는 KIA 외에도 LG, 롯데, 한화 등 인기팀들이 많이 있는데, 딱히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도 않은 KIA만을 편애했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규정이 바뀌어서 KIA가 0.5경기 차로 1위를 한것으로 선동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규정은 당연하지만 시즌 시작 전에 만든 규정이라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이다. 여담으로 [[KIA 타이거즈/2009년/6월/25일|야구계의 625 사변]]에서 SK가 고의 패배를 선택하고, KIA에게 1승을 조공해서 2등으로 밀려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이 경기가 그냥 무승부로 끝났더라도 KIA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스의 2009년 페넌트레이스 승률은 .602로 같지만 KIA 타이거즈가 SK 와이번스와의 상대전적에서 앞섰기 때문에(본 경기 제외 9승 6패 3무) [[승자승 원칙]]에 따라 SK는 그대로 2위가 됐을 것이다. 당시엔 [[타이브레이커]]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1위도 승자승으로 결정했기 때문.[* [[타이브레이커]] 규정은 전후기 리그 시절 도입되었다가 단일리그로 바뀌면서 폐지되었고 한참 뒤인 2020시즌부터 부활했다. 부활 이후 최초 사례는 2021년 [[KBO 리그/2021년/정규시즌 1위 결정전|kt 위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1위 결정전]]이다.] 어쨌든 이때 이후로 완전히 반기아,반전라도로 돌아선 야갤은 이후 난입한 [[코갤]]과 [[정사갤]]등과 엮이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였고 여기서 파생되어 [[네이버 뉴스]]와 [[일베]]까지 나왔으니 웃프게도 대한민국 인터넷 흑화의 본격적인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 [youtube(F89kJxUV6_0)][youtube(CsUGZ-UKAT0)]KIA가 SK에서 따낸 9승 중 3승은 8월 21일, 22일, 23일 문학구장 승부였는데 조범현 감독은 족집게 같은 용병술을 보여주어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21일에는 8회말 4대4에서 이승호 상대로 장성호 대타로 나지완을 내세워 만루홈런으로, 그 다음 경기는 이재주를 대타로 내세워 쓰리런 홈런(20호 대타 홈런으로 KBO 1위, 2위는 최동수 10개로 아직까지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으로, 그 다음날은 SK킬러 윤석민을 내세워 3연전을 스윕해 버리고 SK와의 승차를 쭉 벌렸다. 만약 한 경기만 내줬어도 정규리그 1위가 바뀌었다는 점으로 볼 때 정말 어마어마한 용병술이 아닐 수 없다. * 이 즈음 KIA를 치켜세우고, SK를 깎아내리는 식의 편향적인 기사들이 다수 작성되어 논란이 있었다. 혹자는 2010년에서야 수면 위로 떠오른 친 KIA 성향의 기자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당시 [[SK 와이번스|SK]]의 전담 기자이자 악질 SK까로 불리는 [[최민규(기자)|최민규]]도 일명 '''껌''' 기사로[* [[SK 와이번스|SK]]의 수신호 논란이 벌어질때 나온 것으로 [[SK 와이번스|SK]]선수들이 껌을 씹어서 사인을 전달한다는 상상력이 충만한 기사였다.] KIA의 모 선수가 친한 두산의 모 선수에게 이 소리를 들었다하여 기사화 되었으며 결국 이 당사자들은 [[서재응]]과 김선우로 알려져 있다. * 2009년 고졸 신인으로 입단한 [[안치홍]]과 [[정용운]]은 입단 첫 해에 소속 팀이 우승하는 큰 행운을 맛보았다. 다만 안치홍은 포스트 시즌 동안 내야수비의 안정화에 일조를 하고 7차전에서 추격의 적시타와 추격의 솔로 홈런을 쏘아올리는 등 어느 정도 제 몫을 했지만, 정용운은 별 다른 활약 없이 3차전에 등판하여 타격감이 좋았던 [[박정권]]을 삼진으로 잡은 것이 유일한 업적이었다. 비슷한 예로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아웃카운트 못잡은 [[이상열(야구)|이상열]]과 같은 취급 당한다. 당시에도 똑같은 타고투저 시절이였지만 1999년은 2014년 이전 까지 최고의 타고투저였다. 하지만 2017년에 와서 위기의 팀을 구하는 쏠쏠한 활약을 펼쳐 반지도둑에서 반지갑으로 격상되었으나 2019년 LG로 트레이드 됐다.--정작 2017년 반지는 없다.-- * 뱀발로 2009년 한, 미, 일 프로야구의 챔피언은 역대 최다 횟수 우승팀들이 차지했다. 각각 [[2009년 일본시리즈]]와 [[2009년 월드 시리즈]] 문서 참조. * 한국- [[KIA 타이거즈]] * 미국- [[뉴욕 양키스]] *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 소위 '''최고의 명문구단'''이라는 평가를 받는 팀들이 모두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KIA 타이거즈]]는 '''한국의 [[뉴욕 양키스]]라는 별명답게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뉴욕 양키스]]도 '''미국 4대 스포츠를 통틀어도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모체가 된 팀이 대일본동경야구구락부, 즉 국가대표팀이다. 이 팀이 하는 경기를 더 보고 싶다는 인기 덕에 생겨난 것이 일본 프로야구이며, 리그보다 팀이 먼저 존재했던 것이다.]도 '''일본의 모든 종목을 다 통틀어 최초의 프로 스포츠 구단'''이다. * KIA는 2009년 우승으로 [[기아 챌린저스 필드]]와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다만,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는 [[2014년]]초에 완공되어서 [[2014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를 얻을 수 있었다.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청담동 리베라 호텔에서 열린 축승회에 실질적 구단주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이 참석해서 "우리가 다른 구단보다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부터 야구단에 전폭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말했고 이후 기아 챌린저스 필드를 직접 짓고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건립에 300억원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약속을 지켰다. * 이 시리즈 우승으로 [[엘롯기]]의 일원으로 수모를 겪던 [[KIA 타이거즈]]가 2000년대의 침체기[* 2002년과 2003년에는 플레이오프에서 업셋을 당하는가 하면, 2005년과 2007년에는 8팀 중 8위를 기록하는 수모를 당했다.]를 청산하고 해태 시절에 이어 새로운 강팀 타이거즈의 부활로 이어지지 않을까 많은 해태-KIA 팬들이 기대했었다.[* 이때 이후로 2013년까지 KIA는 거의 매년 전문가들에게 우승후보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2013년에 '''[[타어강]]'''으로 절정을 찍고 무너졌다.] 하지만 2009년 이후 KIA의 행보를 보면 영 신통치가 않다.[* 사실 2009년의 KIA를 보면 행운이 많이 따랐던 시즌으로 보는 것이 맞다. [[아킬리노 로페즈]], [[릭 구톰슨]]의 27승 합작, 플루크 시즌이었던 [[최희섭]]과 [[김상현(1980)|김상현]], 타구가 그라운드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 역대급 BABIP를 달성한 팀의 마무리 [[유동훈]] 등 전체적으로 플루크가 많이 겹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도 낫다. UTU?] 2010년에는 '''16연패'''로 인해 5위로 폭망했고, 2011년에는 이범호의 영입, 그리고 윤석민의 활약 등으로 기세좋게 전반기까지는 1위를 기록하며 삼성과 엎치락 덮치락했었으나, 후반기에 주축선수의 떼거지 부상으로 분위기가 급격히 안좋아지며 간신히 4위를 마크하였고[* LG가 그나마 좀 덜 급격하게 떨어졌으면 오히려 KIA의 순위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나마 포스트 시즌도 1차전 제외하면 내리 깨지며 시즌을 마감하였다. [[선동열|2012년과 2013년에는]] [[타어강|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행히 감독이 [[김기태(1969)|김기태]]로 바뀌고 난 후 2015년에 팀 리빌딩을 착실히 하여 [[KIA 타이거즈/2016년|2016년]]에는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 [[KIA 타이거즈/2017년|2017년]]에는 정규리그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통합 우승을 하였다. * 시즌 시작 때만 해도 아무도 우승후보로 생각하지 않았던 KIA가 우승을 차지하는데 가장 공이 큰건 막강한 외국인 원투펀치 로페즈와 구톰슨이었다. 그 덕분에 이후 KBO의 외국인 타자는 급감하게 되고 외국인 타자가 다시 등장하게 된건 외국인 선수가 3명으로 늘고 3명 모두를 투수나 타자로 몰아서 뽑는걸 금지시킨 2014년이었다.[* 2010시즌. 2011시즌 풀타임을 뛴 외국인 타자는 2010년의 [[카림 가르시아]]와 2011년의 [[코리 알드리지]] 1명씩 뿐이었고 이들 역시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2012시즌, 2013시즌은 모든 팀이 외국인 타자를 뽑지 않았다. 아무래도 2002년부터 2013년 이전까지만 해도 KIA는 타자 용병 뽑는 것을 가장 망친 팀으로 간주되었다. LG나 롯데는 그나마 못뽑아도 인지도가 있는 선수인데... KIA는 아예 밀어주고 나서 그 이 후로 몇 경기 더 못하면 바로 퇴출시켰다. 여기까지는 인내심이 강했나보다... 2014년 [[브렛 필]]이 들어오고 나서는 효자용병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줬는데 현재 타이거즈 타자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3년간 뛰었다. 투수쪽으로는 2002년 ~2005년 중반까지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 되기 직전 활동하던 [[다니엘 리오스]]가 있다.] * 한국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팀이 결정된 첫 사례이자 한국시리즈를 결정짓는 두 번째 홈런이었다. 첫 번째 홈런은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마해영]]이 끝내기 홈런을 침으로써 우승을 확정시켰으나, 6차전이었다. 이는 100년 역사가 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1960년 월드 시리즈]]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빌 마제로스키]]만이 세운 유일무이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메이저리그]]는 물론 [[KBO 리그]]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가 얼마나 나올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21세기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 [[일본프로야구]] [[일본시리즈]]의 경우 시리즈 결과를 결정짓는 끝내기 홈런은 2022년까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여담]]으로 저 끝내기 패배의 팀 수장은 모두 [[김성근]] 감독이다. * 위와 엮어, KBO 팬들에게 역대 최고의 한국시리즈를 꼽으라면 [[2002년 한국시리즈]]와 함께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명승부이기도 하다. 물론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우승했던 시리즈를 최고로 치는 경우가 많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와 더불어 이 시리즈가 역대급 임팩트를 남긴 시리즈라는 것에는 대부분 이견이 없다. [[https://www.hyongo.com/980|비슷한 점도 또한 많다.]] * 리그의 큰 그림이라는 면에서 한국 야구에 길이 남을 시리즈. 2009년 겨우겨우 만들어 낸 선발투수 + 장타력으로 조합된 팀으로 그동안 한국야구를 지배했던 불펜야구를 실제로 박살내면서 그동안 논의되었던 불펜야구 vs 선발야구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동시에 조범현 감독이 짧은 시간 이것을 달성하면서 선발 이닝이팅 야구가 강한 팀 전력에 의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닌, 감독이 의지를 가지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임이 아울러 증명되었다. 다만 KIA 스스로는 부진과 부상으로 이러한 팀 분위기를 잇는 데 실패하였고, 실제로는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삼성의 쾌진격으로 증명되었다. 실제로 한국시리즈 4연속 우승은 [[김응용]] 감독의 [[해태 타이거즈]] 이후로 [[류중일]]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가 현재까지 유이하다. * 2016년부터 KIA는 이 날을 기념하는 행사인 'Go T09ether Day' 행사를 펼치고 있고, 당시의 홈 유니폼을 재현한 이벤트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2009년 당시 SK 소속으로 한국시리즈에 참가했던 [[고효준]]과 [[쇼다 고조]] 코치가 2017 시즌에는 상대 팀의 당시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는 것. 이후 [[고효준]]은 17시즌 우승반지를 획득한 이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2018년|2차 드래프트]]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가 세 시즌 뛰고 웨이버 공시되었고 이후 [[LG 트윈스]]로 이적했다가 한 시즌 뛰고 방출당한 뒤 다시 친정팀 [[SK 와이번스]]로 이동했으며, [[쇼다 고조]] 코치도 2019시즌 이후 [[맷 윌리엄스]] 감독 체제가 되자 제계약하지 못하고 옷을 벗었다. * 이 우승으로부터 8년 후인 [[2017년 한국시리즈]] 3차전, 9회 초 2아웃 상황에서 나지완이 승리의 쐐기를 박는 2점홈런을 날렸다. 그 홈런으로 KIA는 3차전을 승리로 거머쥐었다. 재미난 점은 2009년과 타구의 방향, 때린 위치가 정말 무섭도록 비슷했으며, 잠실구장에서, SBS가 중계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홈런이 나오기 직전 2009년 코시 끝내기 홈런 영상을 틀어주었다. 2009년 영상을 틀어주자마자 바로 홈런이 터졌으니, KIA팬들로서는 본의아니게 데자뷰를 제대로 느끼게 된 셈이다. * 4차전 화보는 [[https://sports.v.daum.net/v/20091020233807923|1]], [[https://sports.v.daum.net/v/20091020223810514|2]], 5차전 화보는 [[https://sports.v.daum.net/v/20091021230507877|1]], [[https://sports.v.daum.net/v/20091022235018240|2]], 6차전 화보는 [[https://sports.v.daum.net/v/20091023235019923|1]], [[https://sports.v.daum.net/v/20091023235806864|2]], 7차전 화보는 [[https://sports.v.daum.net/v/20091024202205504|1]], [[https://sports.v.daum.net/v/20091024202906829|2]], [[https://sports.v.daum.net/v/20091024210016589|3]], [[https://sports.v.daum.net/v/20091024210026148|4]] 참조. * 웃픈 이야기이긴 한데, 2009년 KIA 타이거즈의 페넌트레이스 우승 당시 한명재 아나운서가 KIA 타이거즈는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는 우승을 많이 하고, 정치적으로 편안할 때는 성적이 좋지 못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낳았다는 멘트를 했는데 [[2017년 한국시리즈|KIA의 다음 우승]]에도 이 징크스가 이어지며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되었다. 전두환 대통령 시기인 [[1983년]], [[1986년]], [[1987년]]은 민주화되기 이전이므로 당연하고, 특히 [[1987년]]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어린 대학생의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났으며 [[6.10 민주 항쟁|직선제 개헌을 위한 민주항쟁]]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결국 민주화운동을 이끈 [[양김]]의 분열로 [[1988년]], [[1989년]], [[1991년]] 내내 군부 출신 정치인이 정권을 잡게 되어 이 징크스는 이어졌다. [[1993년]]은 민주화운동가 출신 민간인이 정부 출범이 되었으나, KIA 타이거즈의 연고지인 호남 지방과는 다른 김씨가 대통령이 되어 이 징크스가 이어졌다. 또한 [[1996년]]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 이후 열린 1심 재판에서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해이며, [[1997년]]은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무기징역과 징역 22년 6월과 천문학적인 추징금이 확정된 해이다. 게다가 같은 해에는 [[1997년 외환 위기|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가 터져 대통령이 역대 최저 지지율을 갱신하고 불명예 퇴진하게 된다. [[제15대 대통령 선거|이후 치러진 대선]]에서는 [[김대중|4수 끝에 호남 출신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제16대 대통령 선거|다음 대선]]에서도 경선 당시 [[노무현|광주에서 압도적으로 지지를 받은 영남 출신 대통령]][* 모두가 호남의 장자인 한화갑이나 민주당의 대세론인 이인제가 광주에서 유리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비주류 영남 출신 후보인 노무현이 광주에서 우승하는 데는 그간 노무현이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서 민주당 출신으로 계속해서 부산에서 출마해 낙선한 모습, 5공 청문회 당시 진상 규명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모습, 3당 합당에 반대했던 모습, 또한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는 노무현같이 해야 한다며 그를 인정한 모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이 광주 경선으로 노무현은 민주당 경선의 승기를 잡고 같은 해 대세론의 주인공이었던 이회창마저 대통령 선거에서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그야말로 기적을 일으킨다. 대선 2년 전에 불과 2%의 지지율로 출발했던 후보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며 후일 많은 다큐와 영화에서도 다루어졌다.]이 당선되었으나 이 기간 동안에는 귀신같이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엘롯기]]라는 멸칭까지 얻게 된다. 그러나 [[제17대 대통령 선거|그 다음 해 대선]] 바로 다음 해인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사건|광주에서 압도적으로 지지를 받은 그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고, [[김대중|이에 충격을 받은 그 전 대통령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3달 차이로 동시에 타계하게 된다. 오죽하면 그 해 [[이종범]]조차도 500도루를 분위기가 무거우니 한 달 뒤로 미뤄 기록을 달성하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 KIA 타이거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타계한 8월에만 KBO 월간 최다승인 20승을 기록하고 두 달 뒤인 [[2009년 한국시리즈|그 해 한국시리즈]]에서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2017년]]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2016년 말 대한민국을 강타한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파면되는 사건]]과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사건|그 대통령이 구속되는 사건]]이 일어난 해가 되어 또 이 징크스를 이어가게 되었다. 게다가 [[2017년 한국시리즈|그 해 한국시리즈]]가 끝난 지 5달 뒤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어 징크스에 무게를 더하게 되었다. * [youtube(7KyvCQCZxHo)]7차전 경기는 이 승부는 2020년 8월 14일 재현된다. 역시나 SK VS KIA 경기였고, KIA가 끌려가다 9회 1아웃에서 나지완이 끝내기 홈런을 친 것까지 완벽하게 똑같다! 놀랍게도 이게 정규시즌 나지완의 처음이자 마지막 끝내기 홈런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2020년/8월#s-6.1]] 문서 참고. --근데 그게 그의 선수 시절 마지막 홈런이었다.-- * [youtube(tipdpwRCiLM)][youtube(2o19Ci6Yjg0)][youtube(lyzKre_DfGY)][[재밌는 TV 롤러코스터]]의 [[남녀탐구생활]] 야구 관람편에 나오는 경기가 바로 이 경기이다. 여기서는 남자인 [[정형돈]]이 [[KIA 타이거즈]]의 팬으로, 여자인 [[정가은]]이 [[SK 와이번스]]의 팬으로 출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